요즘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싫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조차 지옥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합니다.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간혹가다 설교 중에 울컥하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중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두 번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시면서였고, 두 번째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였습니다. 모두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열매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그 죽음은 단지 육신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을 포함합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 우리의 영혼은 죽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죽음을 살펴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후회와 더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임종을 지켜보면 참으로 놀라운 장면을 목도합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정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표정입니다. 그것이 가식이고 착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은 아직도 그 생명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사실은 내일의 해골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이쁘고 잘 생겨도 아무리 명품 옷으로 도배를 해도 내일의 관점에서 보면 해골에 그럴싸하게 치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사실을 보지 못하는 인간은 부분적인 것에 붙들려서 삶을 낭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언덕은 갈보리 언덕입니다. 골고다라고도 부릅니다. 골고다는 아람어 ‘굴갈타’의 헬라어 음역으로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영어로 갈보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해골이라고 부르는 언덕에 정중앙에 십자가가 꽂혀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타고 홀러 내리는 예수님의 보혈이 땅을 적시고 골고다(해골)를 적십니다. 그 보혈이 죽음을 덮어 버리는 장면입니다. 마치 에스겔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죽음을 이기고 생명으로 되살아납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삶의 목적과 이유를 발견하라.’
이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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